'코르넬리스 프롱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8.03.13 :: 카이퍼가 말하는 중생, 회심, 세례
  2. 2018.03.10 :: 카이퍼가 말하는 언약과 칭의
아브라함 카이퍼 2018. 3. 13. 23:11

카이퍼가 말하는 중생, 회심, 세례


김원호(dent4834@hanmail.net)


본 글은 코르넬리스 프롱크의 “예수 그리스도외에 다른 터가 없네” 269-272 쪽을 정리하면서 필자의 생각을 첨가한 것이다.



(가정 중생 교리)


● 카이퍼는 믿는 부모의 자녀를 날 때부터 벌써 거듭난 것으로 봐야한다고 가르쳤다.


(필자 주; 카이퍼의 가정 중생 교리presumptive regeneration doctrine은 성도가 신앙고백을 하기 이전에 태어날 때부터 이미 과거완료형으로 거듭난 자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는 신자의 자녀가 태어나면서 바로 사망하게 되었을 때 구원의 가능성을 확대 해석하여 모든 신자의 자녀는 태어날 때부터 거듭난 자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는 카이퍼가 모든 택함받은 신자들이 창세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근거로하여 창세 전에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의하여 거듭난 자로 간주하는 것과 같은 맥락을 이루고 있다)


● 카이퍼의 가정 중생 교리는 은혜 언약이 오직 택함받은 사람하고만 맺어졌다고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복음의 약속이 오직 택함받은 사람에게만 의미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필자 주; 신앙 고백이 있기 전에는 택함받은 사람인지를 알 수가 없다. 설령 신앙 고백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모양만 신자인 경우도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구원은 언제나 불확실성 가운데 있기에 바울의 고백과 같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는 권면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 카이퍼는 “우리는 자녀들의 삶에서 거듭나지 않은 모습을 보기 전까지 자녀들이 거듭난 것으로 가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필자 주; 인간은 아담의 후손으로서 본질적으로 전적으로 부패된 죄인이기에 어느 누구나 거듭 나지 않은 것과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밖에 없다. 심지어 다윗도 삶의 여정 가운데 거듭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의 사건 이전에는 거듭나지 않은 모습뿐만이 아니라   대적자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이러한 상태를 거듭난 상태라고 가정할 수는 없다. 신자는 신앙고백과 더불어 거듭났다고 하더라도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불신자들과 마찬가지의 죄성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7장 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었다.신자라고 하더라도 교만으로 인하여 실족할 수도 있기에 바울은 평생 교만하지 않기 위한 육체의 가시를 지닐 수 밖에 없었다. 카이퍼의 거듲남에 대한 가정은 단편적이며, 자신이 칼빈주의자라고 자처하면서도 칼빈이 강조하였던 인간의 전적인 부패를 가볍게 여기고있다.)



(직접 중생)


● 카이퍼는 말씀의 도구없는 직접 중생을 믿었다.


● 카이퍼에게 설교는 주로 양육을 위한 것이지 죄인을 회개로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죄인들이 먼저 거듭나기 전에는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 주; 카이퍼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창세 전에 이미 일어난 것으로 간주한다. 카이퍼는 택함받은 자가 성령의 사역에 의해서 말씀의 선포가 없이도 이미 거듭났기에 말씀에 대하여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톰 라이트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이전의 이스라엘을 하나님 나라의 실체로 보는 것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는 것이다. 하지만 사도행전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부활하심 이후에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이 선포되었으며, 사도들을 통한 복음 전파와 더불어 시작된 성령의 사역으로 인하여 신자들을 중심으로한 하나님 나라가 선포되었다. 사도행전에서의 회개와 거듭남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하심, 그리고 성령의 강림하심과 성령 사역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카이퍼가 말하는 말씀의 도구없는 직접 중생은 이와같은 사도행전의 역사적 과정과는 다른 무시간적인 개념이다.)


● 이 전통에 있는 설교자들은 생명이 있는 사람, 곧 중생의 씨를 가진 사람에게만 설교하여야한다.


(필자 주; 카이퍼가 말하는 설교는 이미 거듭난 자에게만 하는 설교이기에, 이는 구원을 위한 설교가 아니라 성도의 삶을 위한 설교로만 제한 한다. 이와는 달리 예전에 로이드 존스 목사는 주일 오후 설교를 불신자를 전도하기 위한 설교로 특성화시켰었다)


● 이들이 믿음으로 부르심을 받은 까닭은 영원 전에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을 믿는 것이다.


(필자 주; 이미 영원 전에 의롭게 되어 거듭난 자에게는 구원을 위한 전도가 의미가 없다. 이들에게 필요한 믿음은 구원을 위한 믿음이 아니라 구원받은 것에 대한 믿음이다. 이는 언약적 율법주의에서 구원을 얻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 안에 머물기 위해서 율법을 지킨다는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현상은 행위 언약에 대한 개념을 배제하고 은혜 언약만을 주장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행위 언약을 인정하지 않는 칼 바르트의 언약 사상에 기반을 둔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도 구원을 위한 교회론보다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와 하나님 나라 선포를 위한 교회론을 가지고있다. 신칼빈주의 기독교 세계관을 대표하는 알버트 월터스의 “창조 타락 구속”이 톰 라이트의 새관점과 칼 바르트의 선교적 교회론을 접목시켜 개정판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행위 언약 개념을 배제하였기에 구원을 위한 교회론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선포를 위한 교회론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로마서 5장에서의 둘째 아담 개념은 행위 언약 개념이 없이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기에, 오직 은혜 언약만을 강조하는 신칼빈주의나 신정통주의, 새관점등에서는 둘째 아담 개념을 찾아 볼 수가 없다.)


● 카이퍼 전통에 따르면, 구원의 순서에서 중생은 믿고 회개하라는 부르심 앞에 온다.


(필자 주; 앞에서의 설명과 유사하다. 카이퍼 전통에서는 이미 중생된자에게 요구되는 믿음과 회개는 구원을 위한 것 아니기에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는 언약적 율법주의와 유사한 구조를 갖게된다. 톰 라이트의 새관점이 주장하는 언약적 율법주의에서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get in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구원 안에 머물기 위해서stay in 율법을 지키는 것이다. 카이퍼 전통에서도 믿고 회개함이 중생을 유지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구조, 즉 구원을 얻기 위해서 get in 믿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서stay in믿고 회개하는 구조를 가진다.)


(프롱크) 이에 따르는 위험은 교회 안에 자라는 많은 이들이 자기 영혼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자란다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진노, 죄에 대한 깨달음, 자신의 잃어버린 상태를 절대로 체험하지 못한다.


(필자 주; 카이퍼는 자신이 칼빈의 후예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칼빈주의의 핵심 사상 가운데 한 가지는 인간의 전적 부패와 기독론 중심적인 구원론에 있다. 카이퍼의 가정 중생 개념은 인간의 전적인 부패의 개념을 약화시켰으며, 기독론 중심의 구원론보다는 신론 중심의 하나님 나라 사상으로 중심이 이동이 된 것이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칼빈의 후예라고 말할 수 없다. 기독론 중심에서 신론 중심으로 바뀌는 현상은 신정통주의를 비롯하여 톰 라이트의 새관점등, 현대 신학 사상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행위 언약 개념을 배제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칼빈은 행위 언약이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았어도 그의 사상의 기초는 아담이 하나님과 행위 언약 관계에 있었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기독론 중심의 신학은  처음 아담이 하나님과 행위 언약 관계에 있었으며, 둘째 아담으로서의 그리스도는 처음 아담이 실패한 행위 언약을 성취하신 공로를 근거로 한 의의 전가 개념이 공통 분모가 되어야만 성립될 수 있다. 신칼빈주의와 신정통주의, 그리고 새관점에서는 행위 언약 개념이 없기에 둘째 아담으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 카이퍼는 죽은 죄인이 복음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 죄인을 말씀없이 거듭나게 하신다고 주장했다.


(필자 주; 그리스도의 현세적 십자가의 사건 이전의 중생 개념은, 카이퍼가 주장하는 영원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었다는 개념과, 가정 중생  개념 안에서 하나님의 감추어진 뜻the secret counsel of God을 근거한 개념이다. 말씀을 받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 안에 있었다는 새관점의 주장도 하나님의 감추어진 뜻을 근거로한다는데 있어서 신칼빈주의와 비슷한 유형적 구조를 갖고있다. 역사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행위 언약 안에서 의를 성립하는 사건이기에, 행위 언약이 배제된 개념에서는 시간을 넘어서는 은혜의 구조 안에서 모든 피조 세계를 One-kingdom 개념 안에 통일 시키는 것이다.

사도행전에서의 성령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 더불어 시작된 말씀의 전파와, 이로 인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다. 성령께서 오순절에 임하셔서 사도들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주체가 되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 사역의 결과에 따른 것이다. 성령께서 말씀없이 거듭나게하는 카이퍼의 직접 중생 개념은, 성령의 사역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하여 이루신 말씀과 관계없이 사역을 하신다는 개념이며, 이는 행위 언약에서의 의를 근거로한 하나님 나라와는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신칼빈주의가 톰 라이트의 새관점과 더불어 One- Kingdom 개념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근거로 한 의가 아니라 신론 중심의 하나님 나라 개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회심)


● 카이퍼가 말하는 회심은 택함받은 사람이 그 가정된 바, 곧 거듭난 자로 살아야한다는 뜻이다.


(필자 주; 카이퍼가 말하는 회심은 택함받은 자, 곧 중생한 자의 열매 차원에서 말하는 것이다. 이는 중생된 상태이지만 아직 회심하지 않은 기간이 존재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있다. 카이퍼의 논리라면 다메섹 도상에서의 사건 이전의 바울의 행동은 이미 중생한 자였지만, 아직 회심하지 않은  자의 행동이 되는 것이다. 카이퍼가 보는 중생은 회심 이전까지는 신자 안에 숨겨져있는 것이 된다. 카이퍼에게 회심은 숨겨진 중생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사건이다. 이는 아직 회심하지 않은 이들에게 중생한 자로서의 자격을 부여하는 것으로서 거짓된 신자를 양상하는 면죄부 역할을 한다. 이러한 개념에서의 성령 체험은 이미 중생한 자에게 부여되는 선물과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중생은 오직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 안에게 성령께서 간섭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칭의된 자 안에서 성령의 간섭하심으로 일어나는 결과적 사건이다. 신칼빈주의에서 보는 중생은 결과적 사건이 아니라 이미 택함받은 자의 존재 자체에 감추어져있는 탄생 이전의 사건이다.)



(세례)


● 카이퍼가 말하는 세례는 택함받은 자에게 있다고 생각되는 주관적 은혜를 근거로 시행되었다. 자녀가 택함받은 자가 아니라면, 세례는 헛된 의식이라는 것이다.


(필자 주; 모든 신자의 유아가 중생된 유아라는 논리는 근거가 너무도 빈약하다. 카이퍼는 택함받은 것와 중생을 동일시하기에, 모든 신자의 유아는 택함받은 자라는 논리까지 비약시킨다. 유아에 대한 선택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이기에, 인간은 이를 알 수가 없으며, 참된 아브라함의 자손은 혈통에서 나지 않았기에 신자의 자녀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신앙고백이 따라야한다.

신자가 유아에게 세례를 주는 것의 근거가 유아가 택함받은 자이기 때문이라고 할 경우, 유아 세례는 유아가 중생한 자라는 전제에서 시행하는 것은  주관적인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신자의 자녀라는 이유에서 유아를 중생된 자로 여길 수는 없다. 중생은 탄생 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신앙고백과 회개가 수반되어야하는 것이다.

(프롱크) 분리파 사람들은 하나님의 객관적 약속을 기초로 세례를 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 약속은 은혜 언약 안에 있는 모두에게 선포되지만, 이 약속이 이루어지려면 믿음과 회개를 거쳐야만 한다고 말했다.


(필자 주; 카이퍼는 택한 자는 믿음과 회개 이전에 이미 거듭난 자로 간주하며, 카이퍼에게 믿음과 회개는 조건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


카이퍼의 가정 중생, 직접 중생, 회심과 세례 교리는 분리파 사람뿐만이 아니라 1892년 연합에 참여한 이들에게도 심각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는 1905년 위트레흐트 총회에서 타협을 보게되었다.


하지만 타협안에는 “....가정된 중생을 근거로 믿는 사람의 자녀에게 세례를 준다고 하는 것은 덜 정확한 말입니다. 세례의 근거는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분리파 사람들은 위트레흐트 체결에 찬성하지 않았다. “덜 정확하다”는 말은 카이퍼의 관점에 문을 활짝 열어주었기 때문이었다.


(프롱크) 카이퍼 전통에 있는 이들에게 믿음이란 구원을 위해 죄책을 지닌 영혼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맡긴다는 뜻보다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는다는 뜻이다.



(나가는 말)


카이퍼의 가정 중생은 신자를 회심 이전에 이미 언약 안에 머물고 있는 선택받은 존재로 보고있는 것이다.


카이퍼가 말하는 말씀의 선포는, 새관점에서 주장하는 율법과 마찬가지로,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에 머물기 위한 것이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톰 라이트의 새관점에서 주장하는 언약적 율법주의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게 된다.


언약적 율법주의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율법은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언약 안에 있는 백성이 언약 안에 머물게하도록 주어진 것이다.


이는 카이퍼가 말하는 “이미 언약 안에서 거듭난 자가 언약 안에서의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 선포되는 말씀에 의하여 양육된다”는 방식과 유사하다.


개혁주의에서 보는 말씀 선포는 언약 안에 머물기 위한 것보다는 언약 안에 들어오게하기 위한 복된 말씀이다.


'아브라함 카이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원론과 카이퍼의 영역주권  (3) 2018.12.30
카이퍼가 말하는 언약과 칭의  (0) 2018.03.10
posted by Wonho Kim
:
아브라함 카이퍼 2018. 3. 10. 06:42

카이퍼가 말하는 언약과 칭의


                          김원호(dent4834@hanmail.net)


다음 글은 코르넬리스 프롱크의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터는 없네” 268-269쪽을 정리한 글이다.


이 글은 특히 언약 안에 있는 성도의 칭의의 시기(구원의 서정)에 관한 카이퍼의 주장에 대하여 프롱크 목사가 이의를 제기하는 글이다.


성도의 칭의의 시기에 관하여는 많은 연구가 추가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본문 정리: ●표시는 카이퍼의 주장)


● 카이퍼는 은혜 언약이 택함받은 사람을 대표하시는 그리스도와 맺어진 언약이라고 믿었다.

(필자 주: 카이퍼가 말하는 은혜 언약은 개혁주의에서 말하는 창세 전 구속 언약을 성도에게 현재적으로 적용시키고있다. 카이퍼는 성도가 믿음을 고백할 때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창세 전에 이미 의로워진 상태에 있었으며, 믿음을 고백하는 시기는 자신이 의로운 상태임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 택함받은 사람만이 이 언약(은혜 언약)의 지체다.

(필자 주: 프롱크는 택함받지 않은 사람도 언약의 대상에 포함 시킨다. 프롱크는 언약에는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이 있으며, 행위 언약의 대상에는 에서와 같이 택함받지 않은 이들도 포함되어있다고 말한다)


● 복음의 약속은 택함받은 사람만을 위한 것이다.

(필자 주: 카이퍼는 은혜 언약과 택함, 예정, 칭의와 구원을 동일 선상에 놓는다. 카이퍼는 행위 언약 개념을 배제함으로서 개혁주의에서 말하는 행위 언약의 대상 모두를 언약의 대상으로 보지 않으며, 오직 예정된 자들만을 언약의 대상으로 본다)


● 카이퍼에게 언약과 선택은 사실상 같은 것이다.

(필자 주: 행위 언약 안에 있었으나 은혜 언약에 이르지 못한 이들은 카이퍼에게는 언약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선택받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 카이퍼는 택함받은 사람이 영원 전에 의롭다하심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필자 주: 카이퍼에게 신자는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거듭난 의로운 자였다.)


●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또한 이들을 자기 아들 안에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으로 여기신다는 뜻이다.

(필자 주: 카이퍼에게 신자의 칭의는 과거완료형으로서, 믿음을 고백하는 시기는 인간의 관점에서 인식하는 시기일 뿐이다. 원론적으로는 카이퍼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보이지만 이는 신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 이전에 칭의된 자로 여김을 받았다는 것으로서 신자가 아담의 후손으로서의 죄인이라는 의식을 약화시키며, 인간의 전적인 부패라는 칼빈주의의 핵심 개념에 혼란을 가져온다)


● 카이퍼는 택함받은 자들이 지음받기 전에 영원 안에서 벌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여기심을 받고 모든 죄책과 형벌을 사면받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자격을 얻었다고 말한다.

(필자 주: 카이퍼는 신자의 자녀는 태어나면서부터 거듭난 자라는 가정 중생 교리를 주장한다. 이는 인간의 전적인 부패 개념과 상치된다)


● 카이퍼는 이의 근거를 요한계시록 13장 8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에서 찾는가.


● 카이퍼는 어린 양의 죽음이 시간 안에서 일어날 일이 아니라, 창세 전에 일어난 일임을 이 구절이 증명한다고 말한다.

(필자 주: 신자의 칭의가 신앙고백 이전에 일어난 과거 완료형이다)


● 카이퍼는 이 희생제사에 포함된 택함받은 사람도 그저 시간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 것이 영원 전에 결정된 것이 아니라, 영원 전에 실제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필자 주: 여기서 카이퍼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과 신자의 칭의의 사건이 영원 전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본다.)


(프롱크)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는 시간 안에서 일어난다.


(프롱크) 카이퍼는 로마서 5장 1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는 영원한 칭의를 깨닫게 된다는 뜻일 뿐이라고 말한다.


(프롱크) (1892년 연합에 참여하지 않은) 분리파 사람들은 이러한 카이퍼의 생각에 반대했다.


(프롱크) 영원 전에 하나님의 작정 안에서 일어난 일은 시간 안에서 실제로 일어날 때에만 실제가 될 수 있다.

posted by Wonho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