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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2.04 :: 톰 라이트가 말하는 예수의 소명의식과 상징적 행동들

톰 라이트가 말하는 예수의 소명의식과 상징적 행동들


김원호(dent4834@hanmail.net)


예수의 소명의식


왜 톰 라이트는 예수께서 메시아로서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으셨는지, 그리고 그 소명의식이 어떠한 행동으로 표현되었는지, 그 결과가무엇인지에 대하여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서술을 하고있다. 여기서는 톰 라이트가 예수가 소명의식을 가지고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있는 그의 서술들을 통하여 개혁주의 입장에서 이를 분석 비판하고자한다.


1)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여야만 하는 소명의식


톰 라이트는 예수께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아셨가는 개념보다는 마땅히 하나님이 하실 수있는 메시아로서의 일을 하심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음으로서 하나님의 보좌의 우편에 앉아야만 하는 소명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는 마치 사람이 신이 되어야만 하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표현으로 들리기도 하고 아니면 하나님께 인정 받아야만 하는 의무감? 혹은 자신이 메시아가 되어야만 하는 소명감 등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모호한 표현들을 하고 있다.


톰 라이트는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아셨다"라는 말을 명쾌하게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님은 이스라엘과 온 세상을 위해 성경에 따라 야웨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행하고 그 분만이 되실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고  믿으셨다는 것이다"라고 표현한다.

오직 야웨만 성취하실 수 있는 일을 이루시는 것이 자신의 과업이라고 생각하셨다는 것이다.(N.T. Wright’s ‘The Challenge of Jesus’,121)


이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초자연적인 의식을 품었다는 말이 아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초자연적인 의식을 품었다는 말은 오히려 예수에 대하여 가현설(docetism)을 주장해야만 예수의 신성을 고수할 수있는 18세기의 이신론적 맥락과 함께하는 이들의 견해라는 것이다.(N.T. Wright’s ‘The Challenge of Jesus’, 121)


라이트는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다가 오히려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2) 유대교가 상징하는 것을 구현해야하는 소명의식


예수께서는 유대교의 상징들 즉 성전과 토라, 말씀(word)과 영spirit)과 지혜(wisdom)들이  야웨께서 온 세상을 위해 이스라엘 가운데 계시며 구원을 베푸신 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기에 이러한 상징들을  몸소 구현하는 것이 예수 자신의 소명이라고 믿으셨다는 것이다.(N.T. Wright’s ‘The Challenge of Jesus 122)


3) 예루살렘 입성을 통해  역사적 사실로서 증명되는 나사렛 예수의 소명의식


톰 라이트는 예수가 심판자이자 구속자로 시온에  돌아오실 야웨의 이야기를 몸소 구현하여야 하는 소명의식을 가졌다고 말한다.


라이트는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면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 것은, 야웨께서 심판자이자 구속자로 시온에 돌아오실 것에 대한 예언이며, 성전파괴를 상징하고 최후의 출애굽을 경축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몸소 구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톰 라이트는 나사렛 예수께서 어떤 소명을 의식하셨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로서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N.T. Wright’s ‘The Challenge of Jesus’, 123)


4) 유대의 행동방식에 대한 수정을 통하여 새로운 이스라엘의 행동 규범을 제공해주어야했다.


유대 이스라엘의 문제는 로마에 항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톰 라이트에 의하면 유대 이스라엘은 1) 로마와 결탁하는 헤롯방식, 2) 로마와 분리된 삶을 추구하는 이원론적 방식, 3) 로마에 정면으로 투쟁하는 시카리(Sicarii)의 열혈당방식이 있었다고 말한다.


예수는 이들에게 유대주의의 행동 방식과는 다른 방식을 제공해주는 것이 소명이었다는 것이다.(예수의 도전, 48)


5) 하나님 나라 운동을 시작 할 소명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 나라 운동의 주체가 되심으로 세상을 위한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가지셨다.(예수의 도전, 39)


예수님의 사역 중의 하나는 하나님 나라 운동을 지원할 세력 즉 새로운 백성을 부르시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진정 만왕의 왕이 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신 일이다.(예수의 도전, 52)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초기 기독교 자체가 하나님 나라 운동이라고 생각했으며, 유대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가 탄생되었다고 말한다.(예수의 도전, 193)


6) 이스라엘의 대표로서의 메시아적 소명 의식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이 이교사상과 싸우려는 욕망 자체를 타락으로 보셨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민족주의 혁명의 온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대표로서 이스라엘의 고난의 문제를 스스로 짊어지시는 것이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대표로서 이스라엘이 할 수 없었던 이스라엘의 소명, 곧 세상의 빛이요 종이 되는 그 소명을 이루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이해하셨던 자신의 메시아적 소명이다.

(예수의 도전, 129)


7) 성전의 존재와 역할로서의 부르심의 소명 의식


예수님께서 지니신 소명의식의 중심에는 자신이 성전의 존재와 역할을 하도록 부름받았다고 믿는 신앙이 있었다.


성전에서의 예수님의 행동은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주장하는 상징적 행동이었다.


즉 이스라엘의 긴 이야기가 자신 안으로 집약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믿었음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예수는 자신이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장소요 수단이라고 주장하셨다.


예수는 자신의 소명이 새로운 성전으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믿으셨다. (N.T. Wright’s ‘The Challenge of Jesus’, 111)


8) 전투에서 지는 소명의식


톰 라이트는 예수의 소명을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의 보혈을 통한 속죄 사역이 아니라, 유대 이스라엘의 잘못에 종지부를 찍고서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는 예수님으로 묘사하고자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있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 그 전투에서 지는 것이 자신의 과업이자 역할이며 이스라엘의 대표로서 맡은 소명이라고 확신하셨다.” (예수의 도전, 128)


전투에서 지는 것은,  이스라엘이 마케베우스의 반란과 같이 로마에 대하여 무력적으로 저항하는 것은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한 이스라엘의 해방을 가져올 수 없기에 예수께서는 무저항을 통한 죽으심으로 메시아적 소명을 성취하셨다는 것이다.


9) 이스라엘이 하여야할 역할을 대신할 소명


톰 라이트가 보는 예수의 소명은, 원래 이스라엘이 당담했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서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였기에, 유월절 만찬을 통하여 바벨론 포로의 생활을 청산시키고서, 스스로 이스라엘이 되셔서 로마에 죽임을 당하는 길을 걸음으로서 이스라엘이 하여야 할 것을 친히 담당하셨다는 것이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예수의 십자가는 이스라엘의 소명을 위한 것이다.


10) 이스라엘과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과 공의의 선포


예수는 이스라엘과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과 공의의 계획을  예수 자신의 현존, 자신의 일, 자신의 운명으로  실현시켜야 할 소명을 가지고 있다.(예수의 도전, 49)


여기서 톰 라이트가 말하는 하나님의 구원과 공의의 계획은 이 땅에서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 나라이며, 하나님 나라와 구원이 유대적  이스라엘을 통하여 실현되는 것이다.


예수의 상징적 행동들


예수의 소명 의식은 예수의 상징적 행동들을 통해서 구체화된다.


톰 라이트는 예수의 상징적 행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예수가 하나님의 선택된 대리자였다는 사실을 생각하여야한다고 말한다.(N.T. Wright’s ‘The Challenge of Jesus’, 105)


성전에서의 예수의 행동은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주장하는 상징적 행동이었으며, 이스라엘의 긴 이야기가 자신 안으로 집약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믿었음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예수의 행동들은 상징적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는, 최후의 만찬, 성전에서의 행동, 예루살렘 입성, 십자가에서의 죽음, 부활등이 있다고 말한다.(예수의 도전,169)


하지만 상징적 행동들에 대한 톰 라이트의 해석은 지극히 유대주의적인 해석이며, 자신이 그리는 유대주의적 구도에 맞춘 인위적이고 보편성이 결여된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상징적 행동들이 바리세인과 충돌하는 이유


예수님과 바리세인의 충돌하였던 이유에 대하여 톰 라이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예수와 바리세인의 충돌은 믿음과 행위의 충돌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의제를 내세워, 조상의 규약으로 인한 과대망상적인 자기 방어를 내려놓고 세상의 빛과 이 땅의 소금이 되라는 소명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셨기 때문이다.


2) 이들의 충돌은 서로 다른 종말론적 믿음과 기대로 인한 서로 다른 정치적 의제라는 측면에서 봐야한다.


3) 예수님은 바리세파를 주도하던 그룹의 혁명적인 열정을 가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문시하는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다.(예수의 도전, 81)


4) 예수는 공생애 전체에 걸쳐 마치 자신이 새로운 출애굽을 시작하는 듯 행동하셨다.(예수의 도전, 168)


톰 라이트는 예수의 행동이, 노예상태의 하나님의 백성을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서 구출하러오신것과 같은 상징적 행동 방식으로 해석되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톰 라이트는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상태를 애굽에서의 노예 상태에 적용시키고있으며, 예수의 상징적 행동들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연상시키는 행동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바리세인들이 자신들이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말하는데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바벨론 포로가 아닌 죄의 종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 8:33-34)


신약 어디에도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였음을 시사하는 내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톰 라이트는 줄곧 바벨론 포로생활을 말하고있다.



톰 라이트의 다른 관점들



톰 라이트가 말하는 예수의 소명 의식과 상징적 행동방식에 대한 해석이 전통적 개혁주의와 다른 것은 톰 라이트의 다음과 같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1) 톰 라이트는, 복음주의를 비롯한 서양의 정통파는 하나님에 대해 지나치게 높고 초연한  견해를 오랫동안 지속해왔다고 말한다.(예수의 도전, 181)


그러나 과연 개혁파의 생각이 지나치게 높고 초연한 견해일까?


라이트는 모든 인간이 아담의 후손으로서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의 죄성에 대한 인식이 있을 때는 분리의 개념인 거룩하신 하나님과 가까이하는데 한계를 인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새관점에서의 인간론은 존재론적으로 아담의 죄와는 관계가 없다는 생각에서, 유대 이스라엘을 유대 시오니즘적으로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자부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인간 사회의 완성을 위한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라이트가 말하는 시오니즘적 하나님은 초연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현실적인 삶의 영역에 깊숙히 들어오셔서 인간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에서의 하나님은, 인간 사회 깊숙히 들어오셔서 직접 나라를 다스리시는 왕으로서, 인간 사회와 분리될 수없는 하나님이시다.


이는 개혁파에서 말하는 “이미와 아직”의 긴장감보다는, 이미 이 땅에 실현된 하나님 나라라는 관점을 견지하고있는 것이다.


2) 톰 라이트는 개혁주의가 하나님에 대한 높고 초연한 견해를 전제로 기독론의 문제에 접근한 뒤에 예수를 거기에 끼워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고 말한다.(예수의 도전,181)


톰 라이트는 개혁주의가 가지고있는 전제주의를 비판하고있다.


하지만 전제는 성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개념이다.


톰 라이트는 제2성전 유대교에 대한 역사적 예수 연구를 성경 해석의 전제로 삼는다.


하지만 제2성전 유대교의 자료들에 대하여 얼마나 객관적으로 접근하고 있는지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도 시대의 행적들을 보면, 유대인 성도들이 유대교에서 명확하게 분리되어있지 않은 모습들이 많이 나타난다.


지금의 기독교 교리와 제2성전 유대교에서의 성도들과는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톰 라이트가 근거로 제시하는 제2성전 유대교에 대한 역사적 탐구는 현재 기독교의 표준이 될 수 없다.


톰 라이트는 기독교가 어거스틴 이후에 변질되었다고 보지만, 오히려 아거스틴을 계시로 제대로 교리의 틀이 갖추어지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예수는 성경의 중심이며,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도 중심이 되실 수밖에 없다.


예수를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예수는 유대주의와 대립 될 수밖에 없다.


구속주로서의 예수는 예수에 대한 전제가 아니라 성경 전체가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톰 라이트는 제2성전 유대교의 언약적 율법주의라는 전제에서 예수를 무리하게 유대 중심적으로 해석하고있다.


톰 라이트가 해석하는 예수를 경륜적 삼위일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예수는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하나님이 아니다.


여기서 톰 라이트의 기독론의 문제가 드러난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예수


1. 참된 예수는 역사적 예수 탐구 없이는 알 수 없는가?


톰 라이트는 예수의 소명 의식과 상징적 행동들에 대한 해석의 근거로 “역사적 예수 탐구”에 의한 자료들을 제시한다.


톰 라이트는 자신이 역사적 예수 탐구를 하는 이유는 참된 예수를 알기 위한 것이라고한다.(Simply Jesus, 31)


톰 라이트는 역사적 예수 탐구라는 방법을 통하지 않고는 참된 예수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톰 라이트는 제1,2차 대전 동안에 교회가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를 하지 않았을 때 비역사적 예수가 제시되어 나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했다는 에른스트 케제만의 1953년에 행한 연설에 동의하면서, 역사적 예수 탐구가 없는 동안에는 진정한 예수를 알 수가 없고 이 예수를 따를 수도 없다는 것이다.(Challenge of Jesus, 21)


톰 라이트는 제 3의 탐구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탐구가 시작된 198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예수를 알 수 있었다고 말함으로써, 지상의 교회들은 지난 2000년 동안 잘못된 만들어진 예수를 믿어 왔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2. 성경보다는 1세기 유대문서를 성경 해석의 근거로 삼고있다.


톰 라이트는 성경 해석의 출발을 성경 이외의 자료를 근거로 하고 있다.


그는 성경에 대한 해석은 역사적 검증과 신학적 검증을 통과하여야한다고한다고 말한다.(Simply Jesus, 20)


이를 위해서 신자는 모두 다 1세기의 역사가가 되어야한다는 것이다.(Simply Jesus, 21)


그의 검증 방식은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개혁주의의 방식과는 다른 것이다.


톰 라이트는 성경을 그대로 믿고서 역사적 예수 탐구를 하는 것도 아니며, 성경을 통하여 역사적 탐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성경이외의 1세기 역사적 자료를 근거로하여 성경을 해석하고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근거로 내세우는  1세기 자료는 일부 지역의 보편성이 결여된 자료를 근거로 하기에 성경 해석의 기준이 될 수 없는 자료들이다.


3. 전통적 기독교는 우리가 만든 예수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다?


톰 라이트는 예수께서 품으신 1세기 사고방식은 우리에게 낯설기도하고 불쾌감마저 주고 있다고 말한다.(예수의 도전,134)


전통적 기독교는 1세기 제2 성전 유대교에서 이해하는 예수와 너무도 동떨어진 예수 이기에, 이에 익숙한 전통 기독교에서는 자신의 예수에 대한 해석에 당황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예수에 대한 계속적인 역사적 탐구는 계속되는 기독교적 제자도에 필수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Challenge of Jesus, 15)


그는 심지어 서구 기독교가 동정녀 탄생이라는 신화(?)를 믿고있으며(Simply Jesus, 18), 서구 기독교는 예수에 대한 환타지를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Simply Jesus, 21)



비평


1. 마치 사람이 신이 되었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톰 라이트는 예수가 소명의식을 가지고있음으로 인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고 하나님께 인정 받음으로서,  하나님의 보좌의 우편에 앉으셨으며,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이 되셨다는 의미가 풍겨진다.


톰 라이트가 주장하는 예수의 소명의식과 역할은 삼위 하나님의 위격을 가지고있지 않더라도 가능한 역할이기에, 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논쟁의 소지를 제공한다.


달리 말하면 사람이신 예수님이 어떻게 하나님이 되셨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이해될 수도 있는 해석이다.


2. 유대주의적 메시아 사상의 완성을 말한다.


예수를 소명의식을 통한 메시아로 규정함으로서, 유대적  메시아 사상을 기초로 한 시오니즘이 예수의 소명의식을 기초로 완성되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메시아의 돌아오심이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통하여 이루어졌음을 말함으로서 유대주의적 시오니즘의 완성을 말하고있다.


3. 유대주의적 하나님 나라를 말하고있다.


톰 라이트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적 이스라엘의 구현이다.


톰 라이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적 이스라엘의 성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새이스라엘이시다.


톰 라이트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을 중심으로하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톰 라이트가 보는 예수의 행동 방식은 새롭게 구성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행하여야 할 행동 방식의 규범을 보여주신 분이시다.


4. 힘에 대한 승리라는 구속 방식을 말한다.


톰 라이트가 언급하는 “그리스도의 주되심”은 개혁주의가 전통적으로 이해하고있던 형벌에 대한 충족의 개념보다는 힘에 대한 승리 개념의 교리를 강조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로마의 압제에 대한 항거 방식으로서 희생을 통한 승리를 강조하고있다.


5. 새로운 성전?


예수님께서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는 장소요  수단이라고 주장하셨다면 현재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할 때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과 같은 개념에서 생각하여야 하는가?


톰 라이트는 예수님이 성전이 되신다는 말을 할 때 새관점에서 주장하는 언약적 율법주의 개념에서의 성전을 말하고있다.


언약적 율법주의 개념에서의 성전은 개혁주의에서 말하는 성전과는 차이가 있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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