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카이퍼 2018. 12. 30. 18:26

이원론과 카이퍼의 영역주권


김원호(dent4834@hanmail.net)


신칼빈주의의 이원론에 대한 배타적인 사고는 아브라함 카이퍼에게서 그 뿌리를 찾아 볼 수 있다.


카이퍼는 "우리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만물의 주재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것'이라 주장하지 않으시는 영역은 단 한치도 없다”고 말한다.


이는 카이퍼의 영역주권론의 기초 개념이면서, 정치인으로서의 카이퍼가 교회로부터의 자유를 얻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다.


카이퍼는 칼빈주의를 자신의 정치적 운동의 근거로 삼는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칼빈주의 이해의 핵심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다.


그는 칼빈주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역사적으로 칼빈주의라는 명칭은, 루터파나 재세례파나 소치니파가 아닌 이상, 개혁주의가 움직이는 통로를 가리킨다. 철학적 의미에서, 우리는 이것이, 칼빈이 체계화한 것의 영향 아래에서, 삶의 여러 영역들에서, 개념의 체계 자체가 지배할 수 있도록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인 명칭에서는, 칼빈주의는, 첫번째는 화란에서, 그 다음은 영국에서, 그리고 미합중국에서의 18세기 말 이후로, 입헌적 정치력에 있어서, 국가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적 운동을 가리킨다.”

“Historically, the name of Calvinism indicates the channel in which the reformation moved, so far as it was neither Lutheran, nor Anabaptist nor Socinian. In the philosophical sense, we understand by it that system of conception which, under the influence of the master-mind of Calvin, raised itself to dominance in the several spheres of life. And as a political name, Calvinism indicates that political movement which has guaranteed the liberty of nations in constitutional statesmanship; first in Holland, then in England, and since the close of the 18th century in U.S.A.”(NEO-CALVINISM By Cornelis Pronk)


칼빈주의에 대한 카이퍼의 정의는  역사적, 철학적,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카이퍼의 칼빈주의는 상당히 광범위한 영역을 포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칼빈주의가 의미했던 것은 주로 인간의 전적인 타락으로 인해서, 구원을 위해서는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것이었다.


카이퍼는 칼빈주의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통상적인 칼빈주의 그 이상의 것으로 보고있다.


그에게 칼빈주의는 전체의 삶을 포괄하는 세계관이며, 우리의 삶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체계와 같은 것이었다.


카이퍼는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님께 속하여있기에, 성도는 칼빈주의의 원리를 세상의 모든 영역에 적용시켜서,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세상을 변화시켜고 세상을 구속해서, 그리스도의 것으로 돌려 드려야한다는 것이다.


카이퍼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이 인간의 주권에 반영되어있다고 말한다.


카이퍼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반영된 인간의 주권이 국가와 사회와 교회 속에서 행사되어야한다고 말한다.


카이퍼의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반영된 인간의 주권은 문화 변혁의 근거가되며, 카이퍼는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다 인간의 문화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구속적으로 보존되도록, 문화물의 천국보존을 위한 구속적 문화변혁 운동에 참여하여야한다고 주장한다.


알버트 월터스가 창세기 1장 28절을 “창조 명령”이라고 부르는데에는 카이퍼의 구속적 문화 변혁을 위한 인간의 주권 사상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통적 개혁주의에서 보는 구속은 오직 그리스도께 속하여있는 것이지만, 신칼빈주의에서는 기독교인이 세상의 문화를 구속해서 그리스도께 돌려드려야한다는 것이다.


신칼빈주의에서 보는 인간의 역할은, 문화를 구속적으로 변혁시켜 장차 이 땅에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 되도록하는 것이다.


카이퍼는 이러한 구속적 문화변혁이  칼빈의 사상에 이미 담겨있는 부분이라고 말한다.


알버트 월터스의 문화변혁을 위한 기독교 세계관은 카이퍼의 변형된 칼빈주의가 더욱 구체화되어 나타난 경우이다.


카이퍼가 말하는 구속적 문화변혁에서는 국가와 사회를 교회와 구분하지 않는다.


카이퍼로부터 유래된 신칼빈주의는 세상과 교회를 구분하는 이원론적 사상을 배격한다.


신칼빈주의는 문화적인 삶을 강조하지만, 정작 카이퍼 자신은 무엇이 문화적인 삶인지에 대하여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


영역 주권을 강조한 카이퍼 자신은 모든 영역에서의 주권들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있다.


이는 자연법을 하나님의 주권에 비약적인 대입시킴으로서 나타난 현상이다.


카이퍼는 자연법의 영역에 속하여 있는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이름으로 구속의 영역으로 편입을 시켰다.


통상적으로 자연법은 일반 은혜의 영역에 속하여있다고 보며, 하나님의 구속이라는 특별법은 하나님의 특별은혜에 속하여있다고 본다.


통상적으로 일반은혜의 영역은 구속의 영역과 구분하지만, 카이퍼는 일반은혜의 영역을 구속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는 무리수는 둔다.


카이퍼에게 있어서 일반은혜의 영역은 사실상 구속의 영역에 귀속된다.


개혁주의 두 왕국two kingdom관점에서 보는 자연법은 하나님의 통치의 수단일 뿐 구속을 위한 특별 은혜의 영역으로 보지는 않는다.


개혁주의 두 왕국에서는, 유대인에게 율법이 주어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인류에게 자연법이 주어짐으로서, 율법의 3가지 역할을 자연법도 마찬가지로 하고 있다고 본다.


율법의 3가지 역할은 유대인 사회를 유지 시켜주는 일반은혜의 역할과, 유대인의 죄를 고발함으로서 유대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역할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규범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감당하게 하는 것이다.


자연법도 마찬가지로 이방 사회를 유지시켜주며, 죄를 고발함으로서 그리스도께 인도하며, 삶의 규범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한다.


영역주권을 강조한 카이퍼가 문화의 영역이 어떻게 구속의 영역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마치 율법을 복음과 동일시 하려는 시도와 같은 무모함 때문이다.


자연법이 하나님의 통치의 수단이라면, 복음은 하나님의 구원의 수단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특별은혜가 없이는 자연법을 통해서 인간이 구원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연법을 통해 구원의 특별법으로 인도된다면, 자연법은 구원의 수단으로 참여될 수 있지만, 구원의 특별법으로 인해서 자연법 자체가 구원의 수단이 될 수는 없다.


카이퍼의 자연법에 대한 관점은, 구원에 이르는 수단과 통로라기보다는 하나님의 특별법으로 인해서 자연법 자체가 구원에 참여된 것으로 보고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방법으로 카이퍼는 하나님의 통치 영역과 구속 영역을 동일시하는 모험을 시도한 것이다.


카이퍼는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이름으로, 개혁주의에서 말하는 두 영역, 즉 하나님의 통치 영역과 하나님의 구속의 영역의 경계를 없애버린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반영시킨 인간의 주권에, 모든 피조세계의 구속적 변혁이라는 과제를 부여한다.


인간에게 부여시킨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린다는 구속적 문화변혁의 근거로 삼는다.


소위 영역sphere이라는 이름으로 각종의 피조물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투영된 인간의 주권에 의해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는다.


Dr J. Glenn Friesen은 자신의 저서 "신칼빈주의와 기독교 신지학:

프란츠 폰 바더,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도예베르트"에서 "아브라함 카이퍼의 신칼빈주의의 핵심 개념은 칼빈에서 온 것이 아니며 개혁주의를 근거로하고있지 않다. 그것들의 원천은 카톨릭 철학자인 프란츠 폰 바더(1765-1841)의 기독교 신지학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삶의 모든 부분(우리 존재의 모든 평방 인치)이 우리의 기독교 세계관의 지배를 받는다Kuyper’s idea that every part of our life (every square inch of our existence) is to be governed by our Christian worldview”는 카이퍼의 생각은 신학이 아닐 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철학도 아니라고not a theology or even a philosophy 말한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이원론을 배격하는 카이퍼의 영역 주권 사상은 칼빈주의에 근거를 두고있다고 볼 수도 없으며, 개혁주의 교리에 편입 될 수도 없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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