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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2.01 :: 톰 라이트가 말하는 젊은 유대인 예수

톰 라이트가 말하는 젊은 유대인 예수


김원호(dent4834@hanmail.net)


젊은 유대인 예수


톰 라이트가 말하는 예수는 개혁주의에서 말하는 예수와 많은 차이가 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는 라이트가 예수를 유대주의적인 맥락에서 삶의 새로운 행동 방식을 보여준 패기 넘치는 유대인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묘사하는 예수는 유대주의와 대립적이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중심이 되는 하나님 나라를 새롭게 시작한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톰 라이트는 정통 개혁주의의 기독론을 거부하며, “젊은 유대인”으로서의 예수를 새롭게 정립하고있다.


톰 라이트는 가현설적인, 혹은 반가현설적인 예수를 그리고 있다는 서구 기독교 사회의 예수에 대한 초자연성을 거부하며 좀 더 현실 세계 속에 깊숙히 관여하고있는 예수에 대한 이미지를 그리고자 예수에 대하여 '젊은 유대인'이라는 표현을 하고있다.


라이트는 이 젊은 유대인을 굉장히 위험한, 아니 무모하기 그지없는 소명에 사로잡힌 나머지 눈물을 흘리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성전을 모독한 뒤에 로마의 십자가에 달려 죽는 한 젊은 유대인으로서의 예수라고 말한다.(예수의 도전, 181)


라이트는 십자가의 예수에 대하여, 가시관에 둘러싸인 한 인간의 얼굴로서,소명을 품은 젊은 유대인이 메시아적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초상화를 다시 그렸다고 말한다.(예수의 도전, 182)


톰 라이트가 사용하는 젊은 유대인이라는 표현은 매우 생소하다.


아마 톰 라이트는 예수를 유대인이라는 맥락에서 그리고 싶었으며, 예수의 삶의 모습이 로마에 떳떳하게 맞서는 용기있는 청년이라는 의미에서 젊다는 표현을 하고있다.


이는 매우 인간적인 표현이며, 예수를 유대교의 완성이라는 맥락 속에 집어넣고서 유대적 이스라엘이 따라가야할 모델로서 그리고 있는 것이다.


톰 라이트에게 예수의 성육신은 1세기 제2성전 유대교에서 해석되며, 성육신 하신 예수의 역할은 유대교와 대립 관계가 아닌 유대교의 완성을 위한 것이다.



새로운 도덕률을 만드신 예수님?


톰 라이트는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시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시는 것은 그들에게 새로운 도덕률을 제시하시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사시던 시대의 유대인들은 이미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높은 도덕률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더 높은 도덕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도덕과는 다른 새로운 도덕률을 제공하시기 위한 것이라고한다.


라이트는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행실이란 하나님의 주도권과 언약에서 마땅히 흘러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의 도전, 61)


이와같이 라이트는 유대인의 행실과 예수님의 행실을 같은 속성을 가진 동일한 맥락에서,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같은 방법으로 행하여 질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본다.


라이트가 보는 예수의 행실은 유대인의 행동 방식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이다.


라이트가 보는 복음은 율법과 대립 관계가 아니며, 율법과 연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불연속적인 속성은 배제된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주의의 완성을 위하여 오셨는가?


톰 라이트는 돌아온 탕자 비유에서, 돌아온 탕자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한 하는 둘째 아들로, 아버지는 예수님으로, 첫째 아들은 바리세인과 율법사로 묘사하고있다.


라이트는 아버지와 첫째 아들은 같은 집에 있으면서 평소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말한다.(예수의 도전, 52)


이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예수님은 바리세인과 율법사와 평상시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바벨론 포로 생활하는 이들에 대한 수용에 있어서 의견 충돌을 빚었다는 것이다.


톰 라이트가 해석하는 탕자의 비유는, 항상 아버지 안에 있던 바리세인과 율법사들에게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을 수용하라는 것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을 통한 유대주의의 완성을 말하고 있다.


라이트는 “네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것이로되” (눅15:31)의 말씀은  바리세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음을 암시하고있다고 본다.


즉 최후의 만찬 이전의 예수님과 바리세인 율법사는 아버지와 첫째 아들로서 평소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며 최후의 만찬은 둘째 아들을 받아들이는 잔치로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은 라이트만의 독특한 유대주의적인 새관점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


톰 라이트는 바울과 예수는 1세기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고 말한다.(예수의 도전, 76)


라이트는 바울이 그가 저술할 당시에 유대 유일신 사상의 한 분 하나님에 관해 말할 때와 똑같이 예수에 대하여 말하고있다고 말한다.(예수의 도전, 156)


라이트가 주장하는 유일신 사상은, 바울이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 안에 있었다는 것과 같이 예수도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 안에서 이해되어야한다는 것이다.


라이트가 말하는 유일신 사상은, 예수의 행적도 언약적 율법주의라는 1세기 제2성전 유대교의 맥락에서 해석함으로서, 예수를 유대주의의 틀 안에서 해석하려는 시도이다.


라이트가 말하는 유일신은 인간의 구원을 이루는 의의 근원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이는 구약의 이스라엘이 유일하신 하나님의 의를 근거로한 은혜 안에 머물렀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신약의 성도들도 유일하신 하나님의 의를 근거로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개혁주의에서 말하는 성도의 칭의는 그리스도의 공로에 기초한 것이며, 성도는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아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톰 라이트가 말하는 의의 근거는 불트만 학파인 케제만이 말하는 “하나님의 의”, 즉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실하심”이라는 의를 근거로 하는 것이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유일신 사상은 의의 근거를 성부 하나님께 통합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유대교의 성전으로서의 예수


라이트는, 성전은 유대교의 핵심적인 ‘성육신’의 상징이었으며, 예수는 진정한 성전이라고 말한다.(예수의 도전, 161)


라이트는, 예수님께서 지니신 소명의식의 중심에는 자신이 성전의 존재와 역할을 하도록 부름받았다고 믿는 신앙이 있었다는 것이고, 자신이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는 장소요 수단이라고 주장하셨다고 말한다.


예수는 자신의 소명이 새로운 성전으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믿으셨다는 것이다.(예수의 도전, 165)


라이트는, 예수가 자신과 자신의 사명이 성전을 대체한다고 주장하셨다고 말한다.(예수의 도전120)


예수께서는 성전이 상징했던 것을 몸소 구현한 인물이라는 것이다.(예수의 도전,162)


이상에서 톰 라이트가 말하는 성전으로서의 예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언약적 울법주의 맥락에서 성전이 가졌던 의미가 예수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라이트가 말하는 성전이 되신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형성된 유대적 이스라엘의 완성을 의미한다.


라이트가 말하는 성전은 믿음을 통하여 참여되는 것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성전은 둘째 아담으로서 첫째 아담이 실패한 성전으로서의 에덴을 완성시키신 것이며, 성령의 새창조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 백성 가운데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라이트가 말하는 성전되신 예수는 단지 예수를 유대적 이스라엘로 편입시키는 방법에 불과하다.



종식된 유대교의 부활


톰 라이트는 예수가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유대교 세계관의 대표적인 상징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도전하는 의미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셨다고 말한다.


1)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2) 내가 온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하려함이라


이는 오는 시대를 유산으로 받으려면 가족을 떠나야한다는 것이다.


즉 소유를 버리라는 명령이며, 이는 개인의 헌신을 시험하는 최고의 잣대로서, 수도원적인 도전의 원형으로 간주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다음의 이중적 경고와 함께 등장한다고 말한다.


1. 이스라엘은 성전을 짓고있는데 과연 완공할 수 있을까?


2. 이스라엘은 거룩한 전쟁을 하고 싶어 하는데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이러한 경고는 양도 불가능한 것이 되어 버린 민족적 정체성의 싱징들에 사로 잡히지 말라는 촉구였다고 말한다.(예수의 도전, 87)


이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유대주의의 종식을 설명하기 위한 무리한 적용이다.


라이트의 해석은 유대주의의 종식에 대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사라졌던 유대주의의 부활을 위한 해석이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주의의 종식을 선언하셨는데 반하여 톰 라이트는 다른 차원의 유대적 하나님 나라를 부활시키고있다.



예수의 소명과 유대교


톰 라이트는 예수가 유대교의 상징들을 몸소 구현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말한다.


유대교의 상징로서는 성전과 토라, 말씀(word)과 영spirit)과 지혜(wisdom)들이 있으며, 예수는 야웨께서 온 세상을 위해 이스라엘 가운데 계시며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라고 말한다.(예수의 도전, 179)


이와같이 라이트가 말하는 예수는 유대교의 부활을 의미한다.



예수의 메시아적 소명


톰 라이트가 말하는 예수 자신의 메시아적 소명은, 이스라엘의 대표로서 이스라엘이 할 수 없었던 이스라엘의 소명, 곧 세상의 빛이요 종이 되는 그 소명을 이루시는 것이었다고 말한다.(도전 129)


라이트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이 이교사상과 싸우려는 욕망 자체를 타락으로 보셨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민족주의 혁명의 온상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며, 예수는 이스라엘의 대표로서 이스라엘의 고난의 문제를 스스로 짊어지시는 것이다.


여기서 라이트가 말하는 이스라엘의 고난은 로마에 대하여 싸우는 방식의 문제였으며, 예수는 이러한 고난을 해결하시고자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라이트가 말하는 예수의 메시아적 소명은 유대적 이스라엘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예수의 행동 방식


톰 라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새로운 유대주의적 행동 방식으로 보고있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유대인들의 행동 방식으로는 다음의 세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헤롯방식으로서 로마와 타협하는 유형을 말한다.


두 번째는 이원론적 방식으로서 상황을 피해서 숨어버리는 방식이다.


세 번째로는 시카리(Sicarii)의 열혈당 방식으로서 로마와 정면 충돌하는 방식이다.


예수님의 행동 방식은 유대주의의 행동 방식과 다르며, 예수의 소명과 의제가 극적이고 충격적이라고 말한다.(예수의 도전, 48)


톰 라이트의 이러한 해석은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희생을 속죄 사역이 아니라 유대 이스라엘이 로마에 대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행동하여야 하는지 본을 보여준 방식 차원으로 해석한다.


톰 라이트가 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속죄 사역과는 관계없기에, 십자가를 통한 의도 성립되지 않으며, 전가될 의도 없기에 의의전가 교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로마에 대한 예수의 행동방식이 옳다는 것을 믿으라는 이야기로서 개혁주의에서 말하는 믿음과는 다른 것이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유대주의적 행동방식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서, 그리스도가 유대주의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오신 분으로 묘사된다.


톰 라이트는 예수가 유대적 이스라엘을 완성시키신 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반대하던 일부 랍비들은 주후 135년 이후에 메시아주의를 포기하고 사적인 종교로 변해서 토라의 준수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주장한다.(예수의 도전, 205)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톰 라이트가 말하는 예수는 유대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를 근거로 기독교의 틀을 유대주의의 틀에 맞추어 재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톰 라이트의 “바울에 관한 새관점”은 개혁주의의 교리들을 분해하여 유대주의 맥락에서 다시 조립한 것이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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