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라이트가 말하는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예수



톰 라이트가 말하는 예수의 “회개하고 믿어라”는 무슨 뜻인가?


1)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있다?


톰 라이트는, 요세프스가 로마의 지휘관으로 예루살렘 귀족들에게 로마에 대한 반역을 하지 말도록 설득하면서 말한 “회개하고 나를 믿어라”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요세푸스의 말은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있는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회개하고 믿으라고 할 때에는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있다는 것이다.(예수의 도전, 58)


예수님과 요세푸스의 차이가 있다면 예수님의 말씀에는 종교적이고 신학적인 차원이 있다는 것이다.(25)


2) 무엇을 회개하라는 것인가?


청중들에게 자신들의 의제, 즉 요세푸스와 같이 민족주의 혁명과 같은 터무니 없는 꿈을 포기하고 예수 자신이 보여주시는 이스라엘다운 모습, 하나님 나라의 도래, 하나님의 의제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혁명의 방식을 포기하라는 것인지 민족적인 꿈을 포기하라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톰 라이트는, 예수가 무장 혁명을 반대한 것은 이런 혁명은 신에게 불충성하고 이스라엘이 세상의 빛이 되길 바라는 그 분의 뜻을 거스르는 방법이란 이유로 반대를 표명했다는 것이다.(예수의 도전, 59)


여기서는 방법에 대한 포기를 촉구한 것이지 민족주의적인 꿈을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었다.


라이트는 예수가 믿음을 말한 것은 예수 자신이 로마에 대하여 하려는 행동 방식에 대하여 믿고 신뢰하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라이트가 말하는 믿음은 민족주의적인 꿈을 이루기 위한 행동방식에 대한 방법론적 신뢰를 말하는 것이다.


라이트가 말하는 예수의 십자가는, 로마 정부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저항해야하는지 삶의 방식을 보여준 것이며, 제자들에게 이렇게 하는 방식이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야할 방식이며 이러한 방식이 효과있는 방식임을 믿으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수의 희생을 유대인이나 아니면 인간의 죄악과의 관계성에서 풀어나가지 않고 오직 로마 정부와의 관계성의 문제에서 풀어나간다.


이는 톰 라이트의 유대 중심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따름의 대상으로서의 예수


톰 라이트는 예수의 행동 방식이 옳다는 것을 믿었을 때는 이러한 방식을 따라서 살아야한다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행위와 말을 통하여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 백성, 새로운 가족을 창조하고자 했으며, 이들에게 요구되는 유일한 조건은 예수와 그분이 전하는 메세지를 따르는 것이라고 말한다.(예수의 도전, 97)



믿음의 내용

톰 라이트가 말하는 믿음은 개혁주의에서 말하는 믿음과 많은 차이가 있다.

용어만 같을 뿐 내용에 있어서는 전혀 다르다.

톰 라이트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자기를 믿으라고 할 때 그 믿음의 내용은 예수의 행동 방식에 대한 신뢰를 가질 것을 말하는 것이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믿음의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서 몇 가지 개념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면서 살펴보고자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

톰 라이트가 말하는 그리스도가 걸어간 십자가에서의 처형은,그동안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압제하던 이들에 대하여 하였던 행동 방식을 수정하는 새로운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십자가는 세상에 대한 삶의 투쟁 방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최후의 만찬의 의미)

톰 라이트는 최후의 만찬이 예수의 성육신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라이트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을 청산시키고자 오신 것이라고 말한다.


포로생활의 청산 방법은, 유월절 식사를 통하여 유월절을 기념하며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살이를 청산하였던 것을 상기시키면서,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해방을 선포하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왜 십자가를 지셨나?

그동안 이스라엘은 로마와 타협하는 이들도 있었고, 숨어 피해 다니는 이들도 있었고, 또한 격렬하게 투쟁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이러한 방식들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최후의 만찬을 통하여 포로생활의 종식과 더불어 유대적 이스라엘이 앞으로 어떻게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야하는가를 보여주는 십자가에서의 희생이라는 것이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단일 계획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함으로서 범한 죄로 인한 이스라엘의 국가적 저주를 제거하는 죽음이었다.(박영돈. 톰 라이트 칭의론 다시보기, 136)


예수가 제자들에게 자신을 믿으라는 것은, 이스라엘이 더 이상 똑같은 범죄를 하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공할 자신의 방식을 믿으라는 것이다.

예수는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서, 십자가를 통한 희생방식이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방식이고, 이스라엘이 이러한 방식을 따라 살아갈 때 유대적 이스라엘을 넘어서 이방 세계로 확장된 이스라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라이트가 말하는 십자가에서의 희생은 예수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이스라엘의 구속과 온 세상의 구속이 성취될 것이라고 믿었음을 보여주는 행동이라는 것이다.(예수의 도전,169)


예수는 누구에 의하여 희생 당했나?

라이트가 말하는 예수의 죽으심은 로마에 대한 반역에 의한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로마에 대한 반역을 어떠한 방식으로 하여야하는지 방식의 본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예수의 도전,123)

예수의 죽음은  로마에 의한 정치적 희생이었으며, 예수님의 로마에 대한 의제는 이스라엘 민족이 성전을 회복하고자하는 로마에 대한 의제와 같았다.


라이트는 예수님은 성전을 회복하고자 로마에 대한 반역을 죽음을 통하여 하신 것으로서, 예수님은 혁명적인 왕으로 처형되었다는 것이다.(예수의 도전,131)


라이트는 예수가 성전을 회복하기 위해서 혁명적으로 처형을 당한 것을 믿고서 이스라엘 민족도 자신의 방식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방식이라는 것을 믿고서 이를 따르는 삶을 살 것을 요고한다.


톰 라이트는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에 처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는 예수를 죽인 주체가 유대인이 아니라 로마였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그리스도는 유대인에 의한 희생이 아니라 세상 정부를 대변하는 로마에 의한 희생이라는  것이다.

라이트는 예수가 이스라엘을 해방 시키기 위한 메시아로서 로마 총독을 대면했으며 로마 군대에 의하여 처형된 인물이라고 말한다.(예수의 도전, 202)



부활의 의미


라이트는 예수가 처형 당한 후 하나님이 예수의 로마에 대한 혁명적 행동방식의 정당성을 입증하시기 위해서 예수를 부활시키셨다고 말한다.(예수의 도전, 25)


톰 라이트가 말하는 예수의 부활은 로마에 대항하여 로마에 처형당한 예수의 행동 방식이 옳았음을 하나님께로부터 증명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옳다고 인정받은 표시로서의 부활은 이스라엘을 포로 생활에서 위대하게 복귀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에스겔 37장 시대 이후 ‘부활’은 다양한 의미를 지녔으며, 이는 포로 생활에서 위대하게 복귀하는 것과 언약이 갱신되는 것을 나타내는 이미지였다고 말한다.


부활은 이스라엘이 지닌 죄와 죽음의 문제(포로 상태)가 해결되었고 야웨께서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을 갱신하셨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이미지였다고 말한다.(예수의 도전,198)


이와같이 톰 라이트는 부활을 유대적 이스라엘의 정치적 상황에 적용시킴으로서,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처형당함이라는 행동 방식이 옳은 것이기에, 포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은 예수의 행동 방식을 믿고서 이를 따라서 희생적으로 살 때 더 이상의 포로생활을 하지 않게 되리라는 것이다.


신약의 교회

라이트는, 오늘날의 교회는 예수가 이루신 과거의 예수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모델로 삼아 세상을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하며, 예수께서 당시 유대교에서 행하시고 말씀하셨던 모든 것은, 오늘날 교회가 세상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모습을 지녀야하는지를 적용해야하는데, 이는 예수의 본을 따라서 해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도전73)


톰 라이트가 말하는 교회는 이방인 가운데 세워지는 확장된 이스라엘이며, 톰 라이트는 이러한 교회의 중심에는 유대인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확장된 이스라엘로서의 교회는, 예수를 삶의 모본으로 본을 받는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확장이 되어야한다고 말한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신약의 교회의 믿음은 유대교 안에서 예수의 행동 방식이 하나님께 인정받은 옳은 방식임을 믿으라는 것이다.


나가는 말

메이첸은 예수의 행하신 일보다는 예수 자신을 믿어야하고 예수의 죽음보다는 예수의 인격을 믿어야한다고 말한다. (기독교와 자유주의, 그레샴 메이첸, 76)

예수가 하시는 말씀을 따르는 것은 아담의 후손인 인간에게는 매우 절망적일 수 밖에 없다.

산상수훈은 표면적인 율법보다도 더욱 강화된 내면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율법도 지킬 수 없는 인간에게는 절망적인 말씀일 수 밖에 없다.

산상수훈은 한편으론 인간이 본질적인 죄인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해주며, 다른 한편으로는 베드로와 사도들의 변화된 모습과 같이, 성령의 도우시는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감당하여야 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율법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물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새관점의 주장을 신약에 적용한다면, 산상수훈은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의(케제만이 주장하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의) 안에 머물기 위한 조건이 되는 것이며, 이는 오히려 율법의 멍에보다도 더욱 무거운 멍에을 지는 것이다.

톰 라이트는 예수의 희생의 방식을 믿으면서 이러한 방식을 따라서 살 것을 말하지만, 성전도 상실된 신약 시대에 이러한 방식으로는 하나님의 의 안에 머무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예수의 행동 방식을 믿고 따르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으로는, 최종적 구원에 이르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예수를 더욱 믿을 수 없는 인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더군다나 한때 새관점을 강하게 비판했던 것과 달리, 새관점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김세윤 교수는, 성화를 새관점의 율법의 역할과 대비시키면서 "산상수훈은 이중사랑(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같이 사랑하라)에 대한 강해로서 서기관과 바리세인보다도 더 나은 의를 행해야한다"고 절망적인 방향을 제시하고있다. (칭의와 성화, 김세윤, 118)

이러한 새로운 기준은 성화를 구원의 조건이 되는 행함의 원리로 바꾸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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