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라이트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김원호(dent4834@hanmail.net)
톰 라이트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정통 개혁주의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많은 차이가 있다.
차라리 많은 차이가 있다기보다는 용어만 같을 뿐 내용에 있어서는 전혀 다르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십자가의 의미
톰 라이트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한다.
1)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이스라엘의 소망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예수의 도전,105)
톰 라이트는 그리스도의 죽음은 야웨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시는 이야기라는 큰 맥락에서 보아야한다고 말한다. 즉 그리스도의 죽음은 이스라엘의 소망의 실현을 성취하시는 것이라고 말한다.(예수의 도전,121)
여기서 라이트가 말하는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이루실 새이스라엘이 아니라 역사적 유대주의의 이스라엘을 말하며, 이스라엘의 소망이란 바벨론 유배생활의 청산과 이 땅에 유대주의적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말한다.
2) 이스라엘은 가난과 고난, 바벨론 포로 생활 경험과 순교를 통하여 믿음이 다져짐으로 구속을 이루는 도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가졌다.
여기서 말하는 구속을 이루는 도구는 하나님 나라 건설에 바벨론 유수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중심이 되어 도구로 사용될 것을 말한다.
3) 예수는 이스라엘이 구속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자기 이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의 고난이 이스라엘의 고난의 절정이 되어야한다는 1세기 유대인들의 생각에 부합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라이트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유대 이스라엘의 포로 생활과 연계시켜 풀어나간다.
4)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고난을 통한 구속을 이룰 인물이 바로 자신이라고 믿으셨을 수도 있다.
라이트는 예수의 소명이 둘째 아담으로서의 인류의 구속이 아니라 유대 이스라엘의 구속이라는 영역으로 한정시키며, 삼위 하나님의 제2격이라는 예수의 신성의 의미를 제거하며, 유대적 구속자로 제한시킴으로서 예수의 속성 자체를 인간적으로 격하시킨다.
5)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구속( 이스라엘의 귀환)의 이야기가 지향하던 그 절정의 순간을 의미한다.(예수의 도전,127)
여기서 톰 라이트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인간의 보편적 죄와는 관계없는,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과 연결 시키고있다.
6)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중의 혁명적 메세지이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혁명적 메세지를 전하였는데 이 이중의 혁명적 메세지는 강경파의 단순한 혁명적 메세지가 아니라 혁명의 의제까지 포함하면서 다른 모든 의제를 뒤엎을 메세지이다.(예수의 도전,72)
톰 라이트는 예수의 십자가를 로마에 대한 투쟁 방식의 한 가지로 해석한다.
그동안 이스라엘이 로마에 대하여 취했던 여러가지 방식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며, 예수는 새로운 방식을 제공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을 택하였다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를 통한 혁명의 방식은 열혈당처럼 물리적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른 뺨도 돌려대고 십리도 가라는 메세지의 실천이다.(예수의 도전, 122)
7)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메시아적 소명을 이루는 예수의 방법이다.
예수가 이루고자하는 메시아적 소명은 물리적인 전쟁에 의한 혁명 프로그램의 참여가 아닌 예수의 메시아적 소명을 예수의 방법을 통하여 실현한다.
여기서 톰 라이트가 말하는 메시아적 소명은 속죄 사역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항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는 방법론에 대한 것이다.
8)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대안적 나라의 이야기에 동참을 요구한다.
기존 체제를 전복하는 예수의 의제의 중심에는 제자들에게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따르고, 자신이 실현하는 대안적인 나라(즉 톰 라이트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에 동참하라는 요청이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목적
톰 라이트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이 땅에서 유대 이스라엘의 완성을 위한 것이다.
세대주의는 유대 이스라엘의 구원 방식과 이방인의 구원 방식의 두 가지 구원 방식을 추구하는 반면에 톰 라이트가 주장하는 “바울에 관한 새관점”(앞으로 새관점으로 통일함)은 “하나님의 단일한 구원 계획”이라는 한 가지만 고집한다.
이는 개혁 정통주의가 말하는 단일한 구원 계획과는 다른 것이다.
개혁 정통주의에서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구속 사역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칭의된 자만이 구원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톰 라이트는 세대주의의 이중의 구원방식에서 개혁주의에서 말하는 이신칭의를 제거하고 오직 유대 중심적 구원방식만을 주장한다.
톰 라이트는 유대 중심적인 단일한 구원 계획을 위해서 개혁주의의 구원 방식을 유대교의 틀 안에서 다시 해석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방식이 바로 톰 라이트가 주장하는 새관점이다.
톰 라이트는 자신의 새관점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오직 유대적 이스라엘의 회복과 유대 중심적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는 틀 안에서 재해석한다.
이를 위해 톰 라이트는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목적을 해석한다.
1)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국가적 저주를 제거하는 죽음이었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이스라엘의 죄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구원하시고자하는 단일한 계획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었으며, 바벨론 유배생활은 이러한 죄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한다.
톰 라이트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이스라엘에게 임한 국가적 저주를 제거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한 언약적 축복을 온 세계에 전달하는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말한다.
2)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스라엘의 소망을 실현하기 위한 죽음이었다.
톰 라이트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이스라엘의 소망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며, 야웨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시는 이야기라는 큰 맥락에서 보아야한다고 말한다. (Challenge of Jesus, 85)
여기서 톰 라이트가 말하는 이스라엘의 소망은, 새이스라엘로서의 성도의 소망과는 관계없는, 유대적 이스라엘의 소망이며,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유대적 이스라엘의 소망의 실현이라는 맥락에서 보고있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포로시대의 종말을 뜻한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극치에 다달았던 유배생활의 저주를 단번에 해결하심으로서 포로시대의 종말을 고할 수 있었으며, 예수의 죽으심과 더불어 저주가 제거되고 새롭게 된 언약의 축복이 하나님께서 의도 하셨던 데로 바깥으로 넘쳐 흐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4)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자신의 사역과 이스라엘의 소명을 하나로 묶어준다.
톰 라이트는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통해서 자신의 죽음이 자신의 사역과 이스라엘의 소명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고한다. (Challenge of Jesus, 87)
톰 라이트의 이러한 이해는 슈바이처의 종말론적 이해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서, 다가오는 종말론적 구속에 대한 제2성전기라는 믿음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해석하는 것이다.
즉 메시아적 저주라고 불리는 심한 고난의 시기를 거친 후에 구원이 실현된다는 것이다.
대환란이 닥칠 것이고, 그것을 통해 구속, 새 시대, 죄 용서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에 도래하는 시험의 때를 보셨고 그 분이 그것을 온 몸으로 받으려고 하셨다는 것이다.
환란이 죄 용서의 수단, 혹은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5)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순교자의 본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톰 라이트는 예수님 이전의 순교자들은 고발자들을 향하여 욕설과 협박을 퍼부었지만 초기 기독교의 전통은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오직 용서와 소망의 말만을 담아내었다늠 것이다.
예수께서 고난 가운데도 침묵을 유지하시고 오직 용서와 소망의 말만을 담으신 것은 순교자의 전통에서보면 너무나 새로운 것이어서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톰 라이트는 초기 기독교 순교자들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순교자로서의 삶을 살라는 본을 본받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예수의 도전,130)
여기서 톰 라이트는 예수님 이전의 순교자와 예수님 이후의 순교자를 동일한 목적을 가졌지만 방법만 다른 사람들로 묘사하고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유대 전통의 순교자의 맥락에서 그려내고있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유대 전통의 순교자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 전통과는 상관없는, 아담에서 유래된 인류의 죄를, 둘째 아담으로서 담당하신 것이다.
톰 라이트는 예수님 이전의 순교자나 예수님 이후의 순교자나 동일하게 유대적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유대적 메시아 사상의 선상에 놓고있다.
십자가가 상징하는 것들
톰 라이트는 예수께서 자신이 지신 십자가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상징한다고 말한다.(예수의 도전,169)
1) 십자가는 로마의 압제를 상징한다.
라이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간의 보편적 죄에 대한 것이 아니라 로마의 압제에 대한 것으로 축약시킨다.
2) 십자가는 사랑과 평화의 길, 그 분이 승리의 길이라고 선포하셨던 패배의 길을 상징하였다.
이는 카이사르와 이를 저항하는 이들과는 다른 승리를 상징한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로마는 세상 정부를 대표하기에, 로마에 대한 승리는 세상의 압제에 대한 승리라고 말한다.
세상에 대한 승리는 구속사역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행동방식이 옳다고 인정하는 증거인 부활을 통한 것이다.
톰 라이트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수의 로마에 저항하는 행동 방식이 옳았음을 하나님께서 증거하신 것이라고 설명한다.
3) 십자가는 실천이 아닌 수동성의 상징, 행동이 아닌 수난의 상징이었다.(예수의 도전,133)
톰 라이트는 성전과 다락방에서 예수께서 행하신 것이 실천과 행동이었다고 보며, 십자가는 이와 대비되는 수동적인 것으로 보고있다.
이는 개혁주의에서 말하는 수동적 순종으로서의 십자가와는 다른 것이다.
4) 십자가는 부활이라는 더 크고 의미심장한 상징적 행동이 성취될 것임을 가리키는 표지이다.
톰 라이트가 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비평
1) 속죄 사역과는 관계없다.
라이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속죄 사역으로 보고있지 않으며, 이와 관련하여 믿는 자의 칭의에 대한 어떠한 역할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십자가는 율법의 저주 아래에 있는 죄인들에 대한 형벌을 대신 감당하시며, 고통을 대신 당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역사적 이해에 전혀 동조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예수의 죽으심은, 유배생활의 종식을 의미하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메시아이심을 나타낼 뿐이다.
그가 말하는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은 이스라엘의 유배생활의 회복을 의미하며, 유배 생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을 중심으로하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통해서 이루신 하나님 나라와는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라이트는 칭의에 관한 바울의 교리가 인간의 죄성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기에, 속죄 사역과 관련되어 형성된 그리스도의 역할에 대한 역사적 이해에 관하여 거의 언급을 하고있지 않다.
톰 라이트가 이해하는 칭의란 누가 언약 안에 속하여 있는지 답을 주는 신분 증명서와 같은 것이기에, 톰 라이트는 전통적 개혁주의 신학이 강조하는 속죄교리에 대하여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2) 대속과 하나님의 의(propitiatory substitution vs the righteous of God)
톰 라이트가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실하심”으로 해석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심판과 아담의 범죄 개념이 빠져있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하나님의 공의는 아담의 범죄로 인한 인류의 보편적 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행동 방식의 문제에 관한 것이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하나님의 의에는 심판의 개념이 빠져있기에 그리스도의 대속에 의한 속죄 사역은 필연적으로 제외시켜야하는 개념이었다.
심판의 개념이 없는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은 있을 자리가 없을 수 밖에 없고 더군다나 대속의 개념도 자리를 잡을 곳이 없다.
로마서 1-3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심판과 연결되어 나타나며, 하나님과 동격이신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심판의 진노를 해결하실 수있는 분이시다.
그러나 새관점에서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사역은, 두번째 아담으로서 첫번째 아담에서 나타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는 분으로서의 속죄나 대속이 배제된체, 오직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시는 정치적 의미의 메시아로만 그려지고 있다.
3) 힘에 대한 승리를 말한다.
톰 라이트가 언급하는 “그리스도의 주되심”은 십자가를 통하여 로마에 대항하여 죽으심의 방법으로 얻으신 것이기에, 물리적 힘에 대한 승리를 말한다.
이는 인간의 죄성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을 충족시킨다는 개념과는 다른 것이며, 세상 권력을 상징하는 로마에 대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승리를 할 수 있으셨는지를 손수 모범을 보여주심으로, 세상 권세에 대한 승리의 한 방법을 제시해주셨다고 말한다.
4) 유대적 이스라엘의 소망의 성취
톰 라이트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아담의 범죄와는 관계가 없는, 단지 유배 생활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다.
톰 라이트는 예수의 최후의 만찬이 이스라엘의 유배 생활 상태의 종식을 선언하는 것이었으며, 이스라엘이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새로운 행동방식을 제시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본을 보여주셨다고 말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톰 라이트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유대 이스라엘의 완성을 위한 해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누구를 위하여 죽으셨나
그리스도는 창세 전에 택하신 자를 위하여 죽으셨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니다.
선택받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는 자들이다.
이들에게는 어떠한 요구도 없는 오직 전적인 은혜로 부르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막힌 담을 허신 것이다.
인간은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자이기에 어떠한 공로나 선행도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으며, 인간은 구원의 값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하여 오직 값없이 은혜로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
이러한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한 것이기에 선택받지 않았다고 항의조차 없다.
그날에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자들은 선택받지 못함의 분노가 아니라 자신의 뜻이 좌절된 것에 대하여 분노할 것이다.
새관점이 말하는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가 아니다.
새관점에서 말하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한다면, 전쟁의 위협에서 그냥 희생 당해야만 할 것이며, 북한이 침공한다면 그냥 당하는 것이 답일 것이다.
새관점에서 말하는 십자가는, 선택받은 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희생적인 삶을 요구하는 무거운 것이다.
새관점에서의 십자가는 세대주의자들 보다도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대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삶의 지침이면서 기독교를 유대교에 흡수하려는 것이다.
새관점에서의 십자가는 선택과 예정이라는 개념이 없다.
새관점에서의 십자가는 속죄사역이 아니기에 칼빈의 5대강령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새관점에서의 십자가는 율법의 멍에보다 더 무거운 멍에를 요구한다.
새관점에서의 십자가는 정통 안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다른 복음의 십자가인 것이다.
새관점의 십자가에 의하면 이 세상에는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것에 대하여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톰 라이트의 새관점 > 예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톰 라이트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비평 (1) | 2018.02.08 |
---|---|
톰 라이트가 말하는 예수의 소명의식과 상징적 행동들 (0) | 2018.02.04 |
톰 라이트가 말하는 젊은 유대인 예수 (0) | 2018.02.01 |
톰 라이트가 말하는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예수 (0) | 2018.01.26 |
톰 라이트의 메시아 사상 비평 (0) | 2018.01.13 |